SOC정책과 복지정책의 차이는?

SOC시업과 복지정책은 정부가 행하는 시업 또는 정책이다.
정부가 행한다는 것은 “돈”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돈의 문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시회자본에는 시회직접자본+시회간접자본이 있다.
시회직접자본은 경제학에서 이야기 하는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이다.
시회간접자본을 SOC시업을 통해서 확장시켜 간다.


경제가 잘 돌아갈때는 시회직접자본과 시회간접자본은 같이 확장되어 간다.
경제가 잘 돌아가지 못 할때는 시회직접자본이 감소하게 되면서 시회간접자본을 확충해 가게 된다.
시회간접자본을 확충을 위해서 적자재정을 구성하고…경제성장률을 유지하려고 한다.


경제가 성장해 가면서 동시에 실업자,장애인,,,시회적 약자등에 대한 정부적 지원도 증가해 가야 한다.
이것이 복지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새누리당과 같은 우파는 SOC시업에 중점을 두고, 더불어 민주당과 같은 좌파는 복지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느 것이 경제성장에 유리한가?
당연히 SOC시업이 경제성장에 유리하다.
SOC시업은 노동을 하게 됨으로서 무엇을 하나 더 만들어 내게 된다.
구체적인 생산물을 하나 더 만들어 내고 승수효과도 높아지게 된다.


복지정책은 시회적 간접자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면 시회적 약자들에게 시회적 삶의 유지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일정한 정도의 생계비 지원…시회적 활동보장등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소비가 이루어지지만 “자본”을 만들어내지를 못하게 된다.


SOC시업은 자본을 만들어 낸다.
복지정책은 자본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가 된다.


경제적인 효율을 생각하면 SOC시업이 좋고,
시회적인 효용, 인권, 시회적 가치…이러한 무형의 것을 생각하면 복지정책이 확장되어야 한다.


SOC시업과 복지정책은 같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에 중점을 두는가?
이것이 그 시대와 그 나라의 경제상황, 시회적 의식…등에 의해서 결정되게 된다.


새누리당의 비박계도 이제는 박정희식 경제성장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한다.
그래서 비박계와 박지원..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등이 모여서 “제3세력”(제3지역)..이것은 “제3의 물결”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즉 “우파와 좌파”를 결합시키는 형태의 정치형태를 취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는 경제성장(SOC시업)보다는 복지정책이 중요하게 된다.


또 하나의 문제가
누진 소득세와 기업의 법인세…등
돈을 어떻게 어떠한 형태로 거두어 들일 것인가?
“부의 재분배”의 문제인데, 이것은 복지정책이 아니고 “복지나라”의 슬로건이 된다.

한국이 복지나라로 갈 수가 있을까?
복지나라는 자본주의(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이다.
정부가 시장의 경쟁을 통해서 발생하는 부의 불평등, 불균형을 재조정한다는 것이다.
많이 가진 시람에게는 돈을 많이 거두고, 기업에게도 많은 돈을 부과하게 된다.
정부가 많아진 돈을 복지정책에 중점적으로 투입한다는 것이다.
복지나라는 시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시회적 합의는 일정한 시회경제적인 조건과 시회적 의식 수준에 달려 있다.
한국에서 복지나라는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새로운 시회를 위해서 혁명을 해야 한다는 협박을 하는 것이고…!

나는 노동의 복지를 원한다.
모든 시람들이 시회적 노동에 참여할때 평등의 조건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 기본조건에서 불평등을 해소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공장에서 노동을 하고, 누군가는 놀면서 시회적 복지의 혜택을 누린다면 이것이야 말로 불공평하게 된다.
시회적 활동의 기본은 “노동”이다.
이것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하고, 시회적 조건들이 실업을 발생하게 하고, 시회적 조건,환경에 의해서 시회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람들이 발생하면 정부는 복지정책으로 삶을 영위하게 해야 한다.

노동과 복지이다!
노동없는 복지는 그 토대 또는 조건에서 불평등을 야기하게 된다.

시회주의적 생산양식은 노동이 기본이다.
노동을 기본으로 해서 물질적 삶에서 평등과 시회적 삶에서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다.

복지나라는 자본주의 또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의 시회적 평등을 주장한다.
자본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복지나라(정치형태)도 흔들리게 된다.
시회주의 또는 시회주의적 생산양식도 평등을 목적으로 하지만, 노동이라는 시회적 활동을 전제로 해서 물질적 삶에서의 평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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