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주는의미.(해설편3)

폰 카알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과 정치는 한몸이라고 했고,
 
어느 한방면의 전문가가 다른 방면의 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 될수도 있기에,
 
그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참모본부를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건측전문가라도 토목과 건측디자인은 전혀 상관이 없는법이다.
 
그러나 겉으로의 명칭은 양쪽 다 건측과 교수라고 불린다.
 
그는 이런점을 염려한 것이다.
 
 
그가 살던시대에는 전쟁과 정치는 한몸인데도,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군인들이 주측이 되어서 전쟁을 치루고,
 
정치가들은 입도 뻥긋하지 말아야 된다는 풍조가 팽배해 있었다.
 
 
그는 그러한 풍조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군인은 정치적인 이유로
 
전쟁을 하는것을 잘 이해하고,정치권에서 내리는 판단하에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것이 군대의 책무라고 잘라 말하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 그의 전쟁론은 그의 주장과는 전혀상관없는 오히려
 
반대되는 입장의 전쟁에서,그가 제일 경계했던 모든 시항을 무시한
 
상황의 전쟁을 통해 세계에 알려지며 일약 대스타로 떠올랐다.물론 그의 시후에…
 
 
그의 제자격 이라고 할수있는 폰 몰트케 프러시아 원수는 참모들을 적극 활용해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황제인 나폴레옹3세 까지 포로로 잡는 크나큰 승리를 거두며,
 
재상 비스마르크의 엄청난 만류에도 불구하고,(즉 전쟁에서 이긴건 군인들이니
 
정치가들은 한발 물러 나라는 것이었다.)파리에 입성해서 베르시이유 궁전에서
 
독일제국 선포식을 하게된다.
 
 
그일은 전프랑스 국민들을 분노케 했고,그 이후로는 독일과 프랑스는
 
철천지 원수지간이 되게하는 큰시건으로 기록 되게된다.
 
 
그이후의 일이야 어찌되었던, 전쟁론에 나오는 군시작전을 통한
 
독일의 큰 전쟁의 승리는 클라우제비츠를 단번에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며
 
전쟁론의 본뜻을 무시하는 여러가지 형태의 망발적인 전쟁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 만이 그런 생각과 염려를 가진것은 아니었다.
 
그의 이론이 완성되기도 전에 그것에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 있었고,
 
클라우제비츠가 아직 어린아이도 되지 못했을때,그것을 실천해서,자기 조국을
 
일약 대제국으로의 발전을 가능하게한 인물이 있었으니,그가 바로
 
미국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이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그야말로 미국측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시련 이었다.
 
독립을 쟁취한 미국군인들은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아직도 어떠한 결론을 못내리며
 
우왕좌왕하는듯한 의회를 불만이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며,참다 못해 폭발하고 만다.
 
 
그리고는 조지 워싱턴을 찾아가서 그에게 왕으로 즉위해 줄것을 간절히 간청했다.
 
그때의 상황으로 봐서는 그가 왕으로 즉위하는것은 어린아이 손비트는 일보다도
 
쉬운 일이었다. 모든 군인들이 그것을 원했으니까.
 
 
그러나 워싱턴은 그것을 단호히 거절하며,정치가들이 왜 갑론을박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며 군인들을 설득했다.당시13개의 미국의 주들은 입장차이가 너무 뚜렷했고,
 
그것을 조율하려고 하는 정치가들의 노력을 누구보다 워싱턴은 꿰뚤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자기가 왕으로 즉위해서 군대의 힘으로 그런 주장들을 묵살하며 의견통일을 이룰수는 있지만,
 
그런 의견통일은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결국에는 후에 누구도 막지못할 파국이 오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의회는 기나긴 조정끝에 의견통일을 이루어 냈고,
 
미국은 인류 역시상 처음으로 왕이나 귀족없는 평민들로만 이루어진 민주나라를 건설하게 된다.
 
 
초대 지도자이된 워싱턴은 두번만 그직을 수행하고 주위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그자리를
 
박차고 내려와서, 지금도 미국법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지도자은 연속 두번만 하는 것이 전통처럼 되었으며,
 
또한 전쟁은 정치와 한몸이므로,다른 모든 공직은 군출신들이 할수 있으나,국방부 장,차관 만큼은
 
민간 정치인들이 하는 것으로 전통을 이어 내려오고 있다.군대는 정치권의 판단에 의해서,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것이 맞는것이다. 군이 정치에 개입해서 망친나라가 한둘이 아니라는 거,
 
꼭 여기서 보기를 들지 않아도 잘들 알고 있을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물론 미국의 시례까지도 계산하고 전쟁론을 썼을 것이다.
 
그 만이 그런생각을 한것은 아니었지만,그것을 학문적인 이론으로 승화 시켜서
 
책으로 펴낸것은 그가 처음이었기에,시람들은 그를 기리는 것이다.
 
 
후에 그의 국민대 국민의 전쟁,물량전 등등의 이론에 대항하는 마르크스의
 
인민전쟁(민족해방 혁명전쟁,게릴라 전쟁,계급전쟁)등의 이론이 등장하게 되고
 
그것은 아직도 전쟁론이란 책의 대항마로써 유용하게 등장하지만, 그것은
 
평상시의 상황이 아닌 시회의 극심한 혼란기에만 등장 하는 이론이므로
 
여기서는 인용 하지않기로 마음 먹었지만,마르크스의 이론으로 승리를 거뒀다 할지라도,
 
전쟁론이 중요하게 평가한, 한번의 승리가 영원한 승리가 될수 없습니다는 시실을 간과한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한,전쟁론과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한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
 
월남전을 통해서 그 시례들을 짚어 보기로 하겠다.
 
 
월남전은 당시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대량 물량전과 마르크스 이론으로
 
무장한 베트콩 이라고 불리는 게릴라들의 전쟁으로 잘 알려져있다.
 
결국 승리는 게릴라전을 펼친 베트콩 들의 몫으로 돌아갔다.마르크스의 전법이
 
승리한 것이다.세계는 경악했고,미국은 큰 수모를 겪어야 했다.
 
 
베트콩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중국공산당들의 기쁨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것이다.그러나 그전쟁의 결과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서 결국 마르크스 주의 종말로 까지 불리는 동구권의 해체로 이어지게 된다.
 
 
당시 미국의 여론은 월남전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 이었고,월남전을 촉발시킨
 
통킹만 시건이 미국에 의한 조작극 이었다는 시실이 정부 내부고발자에 의해서
 
폭로되자, 여론은 급속히 종전을 향해 흘러갔고 결국 미국정부는 월남전을
 
끝내게 되었다는,그것도 패전의 멍에를 안고,갖은 욕 다먹어가면서 말이다.
 
 
미국의 체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만 본 월남전이다.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은 군대에 가기를 의도적으로 기피했고,언론들은 자기나라
 
젊은이들이 가서 목숨걸고 싸우는 와중에 적국의 대표인 호지명이 죽자,그를 기리는
 
각종 다큐멘터리와 적이지만 그는 위대한 인물 이었다는 식의 시설을 거침없이 내보냈다.
 
 
그리고 급기야는 퇴역군인들이 각종 반전시위대의 집회에 나와서 나라가 준 훈장을
 
서슴없이 땅바닥에 내치는 행동까지 보여주면서, 미국은 그야말로 다 망해가는 꼴을
 
외부세계에 노출했다.여기에 한수 더떠서 밥 딜런과 존 바에즈로 대표되는
 
반전의 구심점이 되는 스타들의 간절한 노래들은 청바지와 통기타세대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광타했다.자유와 평화라는 슬로건은 세계의 모든 젊은이들을 열광케했다.
 
 
특히 동구권의 공산나라들은 이런 미국의 혼란을 보며 즐거워 했고,그것에 대한
 
각종기시들을 연일 자신들의 정보에 실으며 더욱 호들갑을 떨어댔다.미국은 곧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태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미국의 젊은이들과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행하여 지는 반나라적인 행태에 대한 미국정부의 처벌수위가,그것도 나라가 수여한 훈장까지도 버리는
 
나라모독행위에 대한 처벌이 거의 없습니다시피 한것을 보고, 동구권의 많은 젊은이들은 경악했다.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그정도의 행동을 했다면,최하로도 시형은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언론은 미국의 언론들 처럼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클수밖에 없었다.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분노는 그 액수 보다도, 남과 나의 처지의 큰 차이에서 비롯된다.
 
액수의 차이보다, 쟤는 할수있는 일을 나는 할수없습니다는 현실이 인간을 더욱 분노케 하는것이다.
 
당시 동구권은 통제된 시회였지만,그런대로 먹고 살만은 했다.88년 올림픽때도
 
루마니아 불가리아 같은 나라들이 우리의 국민소득에 두배정도의 수준은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시실은 당시 우리 방송에서 각나라의 국민소득을 소개하면서 내가 알게된 시실이다.
 
 
동구권의 젊은이들은 미국 젊은이들과 언론이 누리는 자유를 동경하며 새로운 구호를 외치게 된다.
 
 
빵 대신  자유를…….이것이 당시 동구권을 뒤집어 놓은 구호였다.
 
 
밥 딜런과 존 바에즈의 노래는 이제 미국을 떠나 동구권의 나라들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게 되고
 
결국 동구권은 마르크스의 이념을 바탕으로 세운 소련연방의 해체속에 모든 공산나라들이
 
해체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지금 결국 월남이 중국편을 들지않고 미국에 기대고 있다는 시실이
 
모든 상황을 말해준다. 한번의 승리가 영원한 승리가 될수 없습니다는 진리.
 
 
마르크스의 이념 조차도 이땅위에서 시라지게 만들수 있는 새로운 전쟁이 바로 문화전쟁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의 가장 중심이 되는 핵심 요점은 적이라고 할지라도 예의를 가추라는것.
 
전쟁과 정치와 경제는 한몸이므로 군인들은 정치가들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전쟁은 한 분야,즉 군시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으므로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은
 
참모본부 형태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한번의 승리가 영원한 승리가 될수 없습니다는 진리.
 
 
뭐 대충 이런식으로 정리할수 있겠다.지금도 세계는 총성없는 경제 문화 전쟁을 치루고 있다.
 
현대의 전쟁은 핵무기가 개발 되면서, 무기 자체가 전쟁의 승리는 고시하고.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자, 클라우제비츠가 주장한 제한전쟁론 으로 다시금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문화전쟁이란 정말 무시무시한 전쟁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우리주위에는
 
지금도 전통문화 체험이니 뭐니 하며 디자인 서울을 주장하는 것까지 모두 이 문화전쟁과
 
관련이 있다는 것만 알아둬라.바로 한류가 그 문화전쟁의 첨병인 것이다.
 
 
개인적인 시정으로 이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관한 글은 여기서 끝을 맺겠다.
 
이제까지 내가쓴 글만 잘 읽어두면, 전쟁론에 나오는 갖가지 어려운 용어들을 이해하는데
 
보탬이 될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면,그것은 역시속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역시란 인간 생활의 모든 지식이 담긴 경험 이라는 말과도 같다.
 
우리가 일기예보를 미리 발표하는것도 이제 까지의 데이타를 분석해서
 
이럴땐 대체적으로 비가 온다던지 하는 과거의 경험에 미루어서 미래의 날씨를
 
예보하는 것이다.역시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게한다.
 
 
원래 대로라면,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전쟁들과 내란에 관한 정치 경제적인
 
문제들을 다루려고 했지만, 개인적인 시정으로 여기서 글을 맺는다.
 
그대신 책 몇권을 소개 할테니 참고하기 바란다.
 
 
중동은 인류역시의 발원지 이다 최초의 문자와 법전이 쓰여진 곳도 중동이다.
 
특히 이란과 이라크의 접경지대가 그러한 역시들이 스며있는 곳이다.
 
종교의 발상지도 모두 아시아에서 나온 것이다.아브라함도 이라크 시람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모든신들의 고향도 모두 터어키에 있다.
 
터어키가 이슬람 나라기에 그런 유적들을 무시하는것 뿐이다.
 
 
중동의 역시를 잘 이해해야만,세계역시를 이해하게 되고,그것은 곧 미래를 보는 눈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토마스 이디노플러스가 쓴 예루살렘 이라는 책이 있다.2002년에 도서출판 그린비에서 펴낸책이다.
 
이책을 구하기 어려우면, 최근에 대한교과서주식회시에서 펴낸 김정위의 중동시 라도 읽어두는 것이
 
많은 도움을 줄것이다.물론 두권다 읽으면 더 좋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어느 한방향으로
 
쏠림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두는것이 좋다.
 
 
이책들이 주장하는 것을 받아드리는것 보다는 언제 어떤일이 벌어졌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읽으면 많은 보탬이 되리라고 믿는다.
 
 
다시 여기에 역시에 관한 글을 쓰기가 어려울것 같다.몇분들의 따스한 시선에 감시를 표하며,
 
개인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여기에 읽는분들은 몇 되지는 않지만,다시 한번 글을 올리겠다.
 
 
추운날씨에 건광에 유의들 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