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잃어버린 20년>-맹바기토건가캬와 다나까 노가다수상

< 맹바기 토건족 가캬와 다나까 노가다 수상>-부동산 폭탄돌리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동산의 광기로 인해 가계의 급속한 대출증가로 인해서, 가계부채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고, 일본기업들과 일본금융회사의 광기의 부동산 투자로 인해, 과잉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일본은 기업과 가계부채로 인한 금융위기가 날것을 염려한 1989년 일본은행 신임총재 미에노 야스시는 그에 따라,,, -은행의 부동산 대출 증가율이 대출총액 증가율을 초과할 수 없도록,- 부동산 대출의 증가를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고. 금리 또한 1989년에서 1990년 사이에 일본 은행은 금리를 일 년도 안 되는 시간에 2.5%에서 6%로 급격히 인상했다..그후 부동산/주식은 폭락했다–가계는 소비를 하는 주체로서 경제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계층입니다. 소비를 활성화하고 서민들의 금융지원이나, 일자리나 취업의 활성화가 가장 중요한 정책입니다. 즉, 내수소비 활성화에 힘을 써야 되는데, 일본정치계와 정부는 멍청하게도 서민들이 진정 바라지도 않는 공공사업 부양책이라는 면목으로 “건설사에게 토목사업이나 건설 사업으로 일자리를 늘리면 된다.”라는 멍청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서민들이 제대로 이용도 안하는 곳인데도, 도로를 만들고, 다리를 짓고, 각종 댐…등 헛발질/삽질을 했다- <특집> 일본의 장기불황~! 일본은 왜 그렇게 무너졌을까? 일본이 왜 장기불황이 왔을까? 왜 그렇게 무너졌을까? 라고 대답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나 일본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서, 주식주가가 크게 폭락해서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이 되었다 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과연, 단순히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주식주가가 폭락한다고 해서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이 되고 있을까요? 만약 대처를 잘했더라면, 그 막강했던 일본이 빠르게 회복할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이 왜 그렇게 무너졌을까요? 일본이 장기불황으로 만들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저는 일본이 그렇게 무너진 것은, 정경유착의 고리와, 일본정부의 무능한 경제 관리들의 대처가 늦어 저렇게 되었다고 저는 그렇게 장담하고 있다.  (1) 고도성장을 이뤘던 일본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경제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 실업자가 온 길거리에 넘쳐났고, 굶어죽는 자들이 늘었으며,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연합군의 맹폭격으로 중요한 일본공업지역이 파괴되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미군과 유엔군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탈바꿈했고, 그걸 계기로 일본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수출이 급속히 증가했고 수출 품목도 값싼 완구나 섬유류, 미국이나 유럽선진국을 따라한 저가의 기계품목의 경공업에서 부품·정밀기계, 조선, 철강과 자동차, 전자제품으로 바뀌었다. 일본정부의 기업들의 지원과, 기업들의 수출실적의 증가, 그리고 도쿄올림픽, 베트남전의 특수효과 등으로 일본경제는 1970년대에 최 정점에 달하기 시작합니다. 1971년 스미스소니언 협정으로, 일본의 엔화가지는 상승하여 엔저가 시작되었고, 1974년~1975년에 오일쇼크로 잘 나가던 일본경제 역시 흔들렸다. 일본기업들은 엔고에 맞춰, 고기술, 정밀기술 산업을 통해 수출을 늘려나갔고, 일본정부 역시, 재정 적자 정책을 펼침으로서, 일본경제는 또다시 빠르게 고도성장을 했다.
1980년대에는 일본경제가 최대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일본의 과감한 진출에 두려워했고, 팍스아메리카나가 무너지고 팍스 자포니카가 세계시대를 구가 할 것이라고 할 정도였죠, 일본기업들과 자본가들은 미국의 부동산과 미국의 은행, 자산 등을 점령하다 시피 했다. 미국의 록펠러타워가 일본자본이 소유하게 되고, 심지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까지 일본이 살 정도가 되었죠. 일본기업들은 미국시장에 일본제품들을 태풍처럼 공략해 나갔고, 전 세계 대부분 시장 등을 잠식할 정도로 일본의 성장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2) 일본의 보호주의 무역과 플라자합의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보호주의무역 형태의 세계시장공략은 미국이 반일주의와 보호주의무역으로 일본시장의 폐쇄성으로 자유무역을 제약하는 일본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일본산 자동차가 미국의 빅5 자동차기업들의 악화로 만들자, 많은 미국의 자동차노조들과 자동차노동자들은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반일감정이 촉발했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일본산 제품에 대한 관세 100% 폭탄 급으로 맞서기 시작했고, 일본이 그래도 미국의 무역조건에 수용하지 않자, 슈퍼301조 같은 초강수나 반덤핑으로 일본의 보호주의무역에 맞서기 시작했다. 
유럽역시, 일본산 제품의 폭풍에 맞서기 위해, EC라는 공동체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일본산 제품에 대한 관세 대폭인상과 일본산제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수입쿼터제로 맞대응 했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국가들 에게 일본의 보호주의 무역에 비판을 제기하고 강수로 대응을 하자, 미국과 유럽국가들, 일본은 플라자합의에 합의를 하게 됩니다. 플라자합의를 하게 되면 일본의 수출로 성장하는 일본경제에 위협이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본은 미국과 유럽국가 들의 달러가치 상승으로 인한 미국제조업, 유럽제조업의 위기로 인한 보호주의 무역의 비판을 무마시키고, 미국과 유럽시장의 효과적인 공략을 위해서 합의를 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일본은 1986년 달러-엔화의 240엔대의 환율은 120엔으로 하락하게 되고, 엔화의 유효환율은 46%나 상승하여 일본 경제에 파괴적 영향을 주고 있었다. 1984년과 1985년에 각각 15.5%와 4.0% 상승했던 일본의 연간 명목 상품 수출은 15.9% 하락했다.

(3) 거품의 광기
 일본기업들은 해외시장에서의 수출로 인한 이익과 수출기업들의 실적의 호재로 인한 주가상승으로 많은 일본 투자자와 일본기업들은 그 이익으로 해외의 부동산시장과 해외의 자산, 해의기업 등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일본의 보호주의무역의 비판이 이르고, 플라자합의로 인해 일본기업들이 많은 피해를 보자, 1986년 3월, 일본의 경단련과 일본 금융회사들은 일본정치계에 막대한 헌금을 내고, 일본정치와 정부에게 자신들의 정책을 요구했습니다. 해외시장에서의 수출이익 감소에 대한 보상차원으로 일본의 부동산시장 규제완화 및 철폐를 요구했고, 부동산 시장에 대출 한도를 대폭 확대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이릅니다. 
일본정부 역시, 플라자합의로 인한 일본기업들의 손해와, 환율로 인한 엔고문제로 고민이 많을 때라 딱 그 코드가 들어맞은 것입니다. 경기부양과 엔고를 저지시키기 위해,  금리를 5%에서 3%로 인하하고, 일본기업들과 일본금융회사들의 요구대로 대출한도를 대폭 확대시켜, 주가와 부동산가격을 인위적으로 상승시켰습니다. 너도 나도 부동산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부동산 가격은 급속하게 상승하기 시작하자, 일본의 건설기업들은 도쿄 수도권이나 대도시를 거점으로 주택건설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가계는 부동산이나 주식자산의 상승으로 인해, 저축보다는 소비를 늘렸습니다. 그러면 일본은 왜 부동산지가가 하락하고 주식주가가 함께 하락했을까요? 그것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과 금융회사들 다수가 도쿄 중심부와 지방 주요 도시에 막대한 금액의 토지를 소유한 부동산 회사들이었습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와 금융규제 완화로 건설업은 그야말로 황금기였죠.
일본기업들은 부동산과 주식주가의 상승으로 인한 이익으로 기업들의 생산설비를 일본국내에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지역에 공장을 마구 세워, 효율적인 국내생산을 통해 해외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기 시작합니다. 일본 정치계나 정부역시 자신들의 정책대로 일본경제가 계속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고, 일본경제는 앞으로도 황금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기업들과 일본금융회사들이 주는 정치헌금을 받으면서, 자기들은 그 기업들의 대출을 갚아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일본기업들의 부실채권과 부실자산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관리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민들의 대출능력이나 대출상환능력도 제대로 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대출을 해주었고, 건설기업들의 무분별한 주택개발로 인한 사업실패나 데미지도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동산과 주식의 시장으로 인한 일본경제를 무너뜨리게 만드는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4) 거품의 붕괴

어두운 그림자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부동산의 광기로 인해 가계의 급속한 대출증가로 인해서, 가계부채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고, 일본기업들과 일본금융회사의 광기의 부동산 투자로 인해, 과잉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일본이 기업과 가계부채로 인한 금융위기가 날것을 염려한 1989년 일본은행 신임총재 미에노 야스시는 그에 따라 은행의 부동산 대출 증가율이 대출총액 증가율을 초과할 수 없도록 부동산 대출의 증가를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고. 금리 또한 1989년에서 1990년 사이에 일본 은행은 금리를 일 년도 안 되는 시간에 2.5%에서 6%로 급격히 인상했습니다.

금리가 인상하면 이자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은행 대출은 자연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럼으로 인해 은행 대출 증가율이 줄어들자, 최근에 부동산을 매입한 일부 매수자들이 현금 동결 상태에 빠졌다. 이들의 임대소득은 부동산담보 차입 이자에 여전히 모자랐지만 예전처럼 부동산 담보 이자를 갚기 위한 필요한 현금을 신규 은행대출로 마련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금리가 인상하고 건설 회사들이 무분별하게 건설한 주택들이 남아돌고 분양률이 하락하고 입주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기 시작하자 결국 부동산을 팔려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투매 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거품의 붕괴는 1990년 1월에 시작했고, 몇몇 대형 은행들이 투자자들의 우대고객 대출에서 큰 손실을 입었고, 기업들과 금융회사들이 분식회계로 이런 손실을 은폐했다는 사실과 부실채권과 부실자산을 숨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붕괴의 물결은 더욱 가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주식에 상장한 기업들과 금융회사들은 다수가 부동산과 함께 투자한 사람들입니다. 금리인상으로 인해서, 부동산 이자에 대한 부채가 커지고, 부실자산이 증가하여 갚아나갈 상환능력이 힘들어지고. 분식회계조작으로 인한 데미지로 니케이 지수는 1989년 마지막 거래일에 사상 최고치인 38000 이상의 정점을 기록한 뒤 1990년에 30%의 폭락과 함께 추락했고 1991년 다시 30% 하락했습니다. 일본의 주가는 2003년 초에 20년 전과 똑같은 수준으로 돌아갔고, 부동산 가격은 주가에 비해 하락속도는 느렸지만 추락하는 깊이는 거의 비슷했습니다.

거품붕괴로 인하여 일본 경제는 기업들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벌어들여 투자한 막대한 과잉설비, 자산효과의 역전과 막대한 부채로 인해 부실해진 기업과 가계의 재무구조, 그로 인한 수요의 급락, 은행들의 대출 능력이 감소했습니다. 초기에 훨씬 더 낮은 금리로 차입한 대규모 부채에 대한 지급 이자의 폭증과 노동 유연성이 낮은 일본의 환경 특성상으로 인해 일본 기업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일본 가정들 역시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부의 축소를 상쇄하기 위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대출이자를 갚지 못해, 파산이 늘어났고, 은행 및 여타 금융기관들은 대규모 대출 손실을 입어 큰 은행들이 도산을 하거나 파산을 했고, 부동산 대출에 특화한 비은행 금융기관들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어 대출을 상환 받지 못한 은행과 금융기관들은 도산을 했고, 은행에 예금을 투자한 가계역시 파산했습니다.

(5) 정경유착이 빚어낸 장기불황의 지속

일본이 거품경제가 붕괴 되었을 때, 일본정치계와 일본정부는 제대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고, 그저 효율성과 효과도 없는 경기부양책만 쓰다가 장기불황을 더 가속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무능한 정치인과 관리로 인해 일본경제를 말아먹게 만든 겁니다.

첫 번째, 초기 금융정책의 실패 1990년 거품경제가 붕괴하게 되자, 일본은행과 일본 관료들은 제대로 대처를 하지도 않았다. 1990년 8월 6%까지 올린 금리를 1991년 6월까지 계속 유지했으며, 게다가 더 가관인 것은, 경제정책을 쓰는 1991년 경제재정백서에서, 구축효과가 높고, 재정정책과 금리정책은 안정세로 갈 것이라고 하며, 안일하게 대처했습니다. 금리를 내리고 금융완화책을 써도, 유동성함정에 빠지는 사태에 빠져 제대로 금융긴축 정책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일본 재무상 들은 거품붕괴로 인해 죄송합니다. 면목없습니다. 만 되풀이 할뿐, 사태에 대한 해결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부실자산 정리를 하지 않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함
거품경제가 무너진 원인 중 하나가 기업들과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과 부실자산을 숨김으로서, 붕괴를 초래했는데, 일본정부는 부실채권과 부실자산이 많아 상환능력이 없는 기업들을 청산정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왜 부실채권과 부실자산이 많은 기업들을 청산시키지 못했을까? 그건, 일본 정치계의 정치헌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기업들과 일본금융회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본정치계에 막대한 정치헌금을 냈습니다. 막대한 정치헌금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이어온 이 정치인들이 입 싹 닦고, 부실채권과 부실자산이 많은 기업들을 정리하겠다? 일본인들의 관습에서는 그건 용납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자신에게 은혜를 준 기업들을 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정경유착이 지나치게 고착화되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금융기관들의 부동산으로 인한 남은 대출부채와, 주식과 자 회사의 파산방어로 끌어다 쓴 부실자산으로 인해서, 금리인하를 해도 당연히 대출할 돈이 없는데 어떻게 대출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금융기관의 대출상환능력을 제대로 판단도 하지 않은 상태로, 대출을 확대해도 리스크의 부담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들이 일본국내에 과잉생산 설비를 하게 되어, 기업의 구조조정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막대한 부동산에 투자한 자금과 과잉생산 설비 투자로 인한 부채가 많아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그로 인해, 기업의 과잉부채는 1990년 240.1%, 1998년 193.1% 라는 과잉부채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데, 게다가 오부치 게이조 내각은 멍청하게도 자신들의 실적과 정치헌금에 눈이 먼 나머지, 부실 중소 금융기업들의 부실채권 정리를 하지 못해, 1997년과 1998년에 은행들의 도산을 더욱 더 가속화 시키는 꼴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 타격이 일본경제 산업의 핵심일꾼인 일본 중소기업들의 대출이 활성화해야 되는데, 금융기관들이 대출할 자금이 없으니 어떻게 대출을 합니까?  그러니 결국, 일본기업들이 서서히 세계시장에서의 철수와 기업의 실적악화로 이어지게 되는 것 이죠.
부실채권이 증가하고 쌓이고 쌓여서, 금융시스템의 신용중개 기능이 마비가 되고, 부채의  이자가 증가하여, 신용기능 자체에 마비가 와 장기불황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 번째, 비효율적인 막무가내 식 공공사업 부양책으로 도리어 악화가 됨
일본정부가 거품경제가 무너진 후, 대부분 경기부양책에 투자한 곳이 공공사업 부양책입니다. 일본의 경기부양책 50%가까이를 공공사업에 지출했습니다. 어느 국가든 상관없이 경기가 악화되면, 가장 취약한 곳은 가계와 서민들입니다. 가계와 서민들이 바라는 것은 당연 경기회복이고, 가계와 서민들이 피해를 적게 입는 것을 바랄 것입니다. 가계는 소비를 하는 주체로서 경제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계층입니다. 소비를 활성화하고 서민들의 금융지원이나, 일자리나 취업의 활성화가 가장 중요한 정책입니다. 즉, 내수소비 활성화에 힘을 써야 되는데, 일본정치계와 정부는 멍청하게도 서민들이 진정 바라지도 않는 공공사업 부양책이라는 면목으로 “건설사에게 토목사업이나 건설 사업으로 일자리를 늘리면 된다.”라는 멍청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서민들이 제대로 이용도 안하는 곳인데도, 도로를 만들고, 다리를 짓고, 각종 댐을 짓고, 각종 발전소, 복개천 정비사업 등의 쓸때없이 필요없는 전시행정의 공공사업을 벌여, 도리어 경제침체가 계속되고 있고, 국가부채가 급격하게 늘어 일본이 지금 파산위기까지 몰려 있는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혼슈와 시코쿠를 잇는 아카시대교 사업이라든가, 간사이공항 공항도로 정비사업, 니가타현의 포장도로 사업 등의 이용자가 적은 공공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추진해, 도리어 국채만 늘게 만들게 하는겁니다.
네 번째, 가계의 소비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도리어 소비세 인상시키는 멍청한 일본정부
일본정부의 감세예산 표를 보면, 기업과 법인, 금융기관의 감세가 급격하게 인하했지만, 가계와 서민들을 위한 감세는 1995년에서 1997년 사이에 한시적인 감세로 이어졌습니다. 고작 감세안 비율은 1994년 11월 일본국회에 통과된 GDP대비 0.6%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2만엔 자리 상품권을 뿌리면서, 경기부양책을 쓰려고 애를 썼으나, 국민들은 저축을 하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걸로 쓰면서, 소비가 활성화가 되기는커녕 소비가 악화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금리인하로 금리소득이 감소되는 상황이고 소비시장이 최악으로 얼어붙은 상황에서 도리어 멍청하게 1997년 4월에 소비세를 8%~12%나 인상을 하여 일본국민들의 소비를 완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경제체계를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모험이고, 거품경제로 무너진 일본의 예를 들며, 우리나라는 이렇게 되지 않도록 대비를 하고 처신을 잘해야 합니다.

<다음 편 무너져 가는 세계 제 2위 경제대국 2편이 계속 이어집니다.> http://jpnews.kr/bbs.html?Table=ins_bbs2&mode=view&uid=272————————————————————————–<일본 재정적자/국채 과다-> 국가 신용등급  하락-http://media.daum.net/economic/view.html?cateid=1046&newsid=20110824094627380&p=yonh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