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을 보고

영화 ‘명량’을 보고   영화 ‘명량’을 봤다. 이미 여러 책을 통해 알고 있었고,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었기 때문에 혹시 그저 그런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영화도 재미있고, 내용면에서도 독특한 해석이 마음을 끌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순신 장군이 아들과 대화를 통해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풀어주는 진행방식이다.   이순신장군이 없었더라면 조선이 일찍 망했을지도 모르는 엄청난 상황에서도 선조와 당시 신하들은 이순신장군을 죽이려고 했다. 그것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참으로 멍청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이순신장군 아들의 입을 통해 그런데도 왜 왜적과 싸우려고 하는지, 왜 조선을 지키려고 하는지 묻는다. 이순신장군이 이렇게 대답한다.   “의리는 왕에게 향하고, 충은 백성에게로 향한다.”   내가 잘못 해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이순신장군이 왕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백성을 구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한참 동안 되새겨봤다. 왕이 백성을 위하지 않으면 왕이 아니고 단지 폭군이거나 독재자일 뿐이다. 이런 왕은 백성에게 없는 편이 낫다. 있으면 백성들만 더 힘들게 한다. 반대로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은 백성을 위하는 진정한 왕이 어떤 모습을 하여야 하는지, 어떤 정책을 실시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 영화의 배경이 된 임진왜란 당시의 우리나라 정치상황이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상황과 너무나 비슷한 면이 많아 참으로 걱정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나치게 둘로 나뉘어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백성들을 둘로 나누어 싸우도록 만들고 있다는 면에서 오히려 오늘날 더 심각하다면 더 심각한 상황이다.   선조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올지 어떨지 알아보라고 두 신하를 보냈다. 일본에서 같은 장면을 보고 온 두 신하는 정 반대로 의견을 내놓는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 판단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장면을 보았으니 본 내용은 똑같아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본 내용이 똑같다면 최소한 대화는 되지 않겠나?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참으로 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을 보고 온 두 신하처럼 무슨 일을 해도 정 반대로 말한다. 심지어 우리말로 쓴 글귀와 낱말하나 조차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국민들이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집회를 하면 반대집회가 옆에서 열리는데 마치 이 불을 끄기 위해 저 불을 이용하는 모습 같아서 마음이 안타깝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   싸움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가며 수군들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며 슬쩍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내비친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 후손들이 알기나 할까?”   “아, 그것도 모르면 후려자식이지.”   그때 수군들은 자기 자신과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러면 남북으로 갈라진 지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수군들은 남한을 지킨 것인가? 아니면 북한을 지킨 것인가? 아마 어느 쪽도 아닌 남한과 북한 모두를 지킨 것일 것이다. 오히려 그 때 수군들이 오늘날 살아서 다시 우리 앞에 온다면 화합하지 못하고 60년 넘게 둘로 나뉘어 다투는 우리 후손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이놈들아, 다투었으면 화해할 줄도 알아야지. 5000년 동안 우리 민족을 괴롭힌 중국, 일본놈과는 몇 년 만에 화해하고 잘 지내면서, 형제끼리 잠깐 싸웠다고 60년 넘도록 갈라져서 아직도 그때 싸웠던 생각만 할겨? 창피하다. 창피해. 넘보기 창피해. 우리가 어떻게 조선을 지켰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 땅을 지켰는데 ……아직도 그 꼬락서니 하고 있는 너희가 후려자식이다. 후려자식여.”   영화 ‘명량’을 봤다. 위대한 지도자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어떻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지 봤다. 지도자는 백성을 춤추게 할 수도 있고, 백성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