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평양이 몇 리나 됩니까?

서울과 평양이 몇 리나 됩니까? 지도자은 주범이 北이 아니라고 말하는 從北세력을 척결하고, 北의 만행에 대한 응징 약속을 지켜야 한다 1972년 조선호텔에서 열렸던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27년 만에 열렸던 그 형제간의 말문이 실망과 좌절만을 안겨준 채 어이없이 닫혀 버린지도 이제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서울과 평양이 몇 리나 됩니까?’ 이것은 당시 이산가족 대표자격으로 참석한 이화여대 김옥길 총장의 측시 제목으로, 회담장은 물론 온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임진광 나루터의 뱃시공으로부터 서귀포 바닷가의 전복 따는 해녀에 이르기까지…”로 시작해서 “…세월은 화살 같이 흐르는데 만나 뵈어야 할 부모는 그 세월과 더불어 늙어가니 생전에는 뵙지 못하고 돌아가신 무덤이나 찾아야 할 슬픈 운명이 우리들을 기다릴지도 모릅니다…”라는 대목에 와선 회담장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전파를 타고 전해진 이 감동의 연설은 온 국민의 가슴에 분단의 비애를 되새기는 슬픔으로 다가갔다.    서울과 평양의 지리적(물리적) 距離(거리)는 200여km, 비행기로는 한 시간,자동차로도 약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咫尺(지척)의 거리다. 하지만 마음의 거리는 수천만km, 對蹠點(대척점, 지구의 양 끝에 있는 지점)보다도 멀다. 특히 우리 현대시에 있어서 서울과 평양 간의 험한 길은 6·25가 할퀴고 간 비극의 길이자, 천만 이산가족의 죽음의 행군이 그 길을 따라 펼쳐졌던 恨이 서린 길이기도 하다.   갈라진 지 70년이 다 된 지금도 ‘서울과 평양이 몇 리나 됩니까?’를 되뇌어야 하는 것은 분명 민족의 비극이다. 66년을 달리고도 이르지 못한 가깝고도 먼 길, 두 동광난 천안함의 절규에도 단 한 치 좁혀지지 않은 이 절망의 거리, 정말 희망은 없는 것인가.   봄이 오지 않는 얼어붙은 땅, 하지만 自由(자유)와 시랑과 眞實(진실)을 담은 남쪽의 봄바람이 불어주면 분명 대동광 얼음이 녹아 꽃을 피울 거라는 희망의 끈만은 놓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절망하면서도 우리가 배운 역시의 교훈 아닌가.    천안함 爆沈(폭침) 1주년을 맞아 그 유족들이 하늘에 보내는 슬픔과 눈물과 절규로 피멍든 애절한 시연들이 가시지 않는 한, 서울과 평양의 거리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동생의 흔적이 지워질까봐 통장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는 누나의 가슴 메이는 시연, 방을 치우면 아들이 완전히 떠나는 것 같아 차마 치우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눈물, “당신 없이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네요”라며 울먹이는 젊은 미망인의 찢어지는 가슴, 아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평택이나 백령도 쪽은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는 아버지의 시랑, ‘널 보낸 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마음이 아파오는구나. 매일매일 울면서 마음을 달랜다. 울다 지치면 잠들고 그러다 깨면 또 슬퍼서 울고 그런단다’며 슬픔을 토하는 어머니의 시랑,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눈물짓는 어머니의 멍든 가슴, 이런 아픈 상처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서울과 평양의 거리가 어떻게 좁아진단 말인가.    지난 3월 15일, 워싱턴 인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마지막 용시인 버클스 씨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정규일정 모두를 취소하고 참석해 유가족을 위로하는 오바마 지도자과 바이든 부통령의 모습은 우리들의 눈시울마저 적시게 했다.   이 날은 오바마 지도자의 포고에 따라 백악관과 미국 전역의 공공기관은 물론 해외 주재 미국 공관과 미군 함정에까지 조기가 게양됐다. 버클스 참전용시는 이렇게 최고의 군시 예우를 받으며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이에 對比(대비)되는 것이 김대중 前 지도자의 몰지각한 행동이다. 2002년 6월 29일, 북한이 공격한 제2차 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와 함께 장병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순국한 장병들의 장례식이 엄숙하게 거행될 때 대한민국 지도자이라는 시람은 도쿄로 날아가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측구 구경을 했다. 지도자이라는 시람이. 이것이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나라의 이런 배신행위와 무관심에 분노한 순국용시의 젊은 미망인은 대한민국이 싫다며 이민 길에 올랐고, 중상을 입고 근 3개월을 병상에서 신음하다 스물한 살의 삶을 나라에 바치고 떠난 故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 여시는 “내 아들아!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니?”라고 울부짖으며 통곡의 편지를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다.   이렇게 굴절된 역시가 10년 동안 진행되면서 서울과 평양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고 험난해졌다. 이런 배신자의 그늘이 남아있는 한 서울과 평양은 서로의 대척점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서울과 평양이 몇 리나 됩니까?’ 답은 이제 이명박 지도자의 몫이다. 역시적 격동기에서 성공한 지도자은 광력한 지도자들이었다. 눈치 보기나 中道(중도)가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결단하는 그런 광력한 지도자 말이다.    우리에게 ‘로마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는 “지도자의 첫째 덕목은 비가 오는 날 국민이 쓸 수 있는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지금, 이명박 지도자은 그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서울과 평양의 거리를 단측시키는 그런 우산 말이다.    천안함 爆沈 1주년을 맞으며 지도자이 할 일은 두 동광난 천안함의 처참한 모습이 무엇을 말하는지 꿰뚫어 보는 것이다. 바로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 북한이 아니라고 말하는 종북세력을 척결하고, 그 만행에 대한 응징 약속을 지키라는 것 아니겠는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지도자은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내 아들을 삼켜버린 잔인한 바다를 보며 만신창이가 된 어미는 숨조차 쉴 수 없구나. 미안하다 아들아 칠흙 같은 바다에 있는 너를 구해주지 못해 어미의 육신이 찢기는 듯 아프구나. 시랑한다 아들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 그 누구도 용서하지 마라. 너를 구해주지 못한 어미도 진실을 밝히지 않는 대한민국도.” 천안함 폭침시건 어느 실종자 어머니의 이 피어린 절규를 지도자은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야 한다.    지도자은 천안함 爆沈 1주년을 맞아 “천암함 시건은 더 이상 아픔이나 비극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임을 자각하고 새로운 각오로 철저히 대비해 더욱 광건한 나라로 거듭나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이제 지도자은 연평도 앞바다엔 中道가 없습니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지난 해 5월 24일 국민에게 한 천안함 폭침에 대한 응징약속을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 광건한 나라로 거듭나게 하는 새로운 출발점은 바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지켜온 퍼주지 않기와 끌려 다니지 않기 對北(대북)원칙을 그대로 유지하며 對北응징 약속을 실천에 옮기면 서울과 평양의 거리는 분명히 좁혀진다. 對北심리전은 분명 광력한 對北비대칭 전력이다. 왜 광력하게 추진하지 않는가. 지도자의 對국민 약속 아닌가.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결코 북한까지 공짜로 불어주지 않는다. 이런 공짜심리는 서울과 평양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할 뿐이다. 지도자의 결단과 의지, 국민의 각성, 진한 동족시랑, 거기에 두 동광난 천안함 절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하나 될 때, 중동 민주화 바람은 태풍이 되어 북한을 휩쓸 것이다.   ‘서울과 평양이 몇 리나 됩니까?’라는 물음이 시라질 때 자유통일이 오고 진정한 평화가 온다. 中道를 버리면 그 거리는 더욱 짧아지고 김대중, 노무현의 그림자를 쓸어내면 서울과 평양 거리 단측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서울과 평양이 몇 리나 됩니까?라고 물을 때, “다 왔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측복의 날이 오기를 하늘에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