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아웃', 이 신자유주의적 죽음

 
[과로死회] 실적이 곧 인격인 세계의 비참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2017.06.25 11: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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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write(“”); 2~3인분의 일을 혼자서


쥐어짜임, 짓눌림. 타들어감, 메마름, 자존감 훼손, 고립감, 절망감, 내몰림, 무력감, 우울감 또한 죄책감까지… 과로자살에서 발견되는 감정 상태, 어휘들이다. 어떤 어휘들이 추가되고 광조되어야 할까? 어떤 요인들이 노동자들을 비참함으로 내모는가?


과도한 업무+실적 압박으로 인해 우울감, 고립감, 무력감 같은 정신 고통에 시달리다 빚어진 자살을 과로자살(Karojisatsu)이라 일컫는다. 과로시(Karoshi)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1990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 토요타의 어둠>을 쓴 와타나베 마시히로는 과로자살이 1980년대부터 두드러진 시회적 현상임을 지적한다. 토요타는 생산과정 내 모든 비용의 최소화를 목표로 하는 적기생산방식(Just In Time)을 전시적으로 도입해 한때는 세계 경영의 교과서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생산 방식은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 노무 관리로도 악명 높았는데, 여러 문제 가운데 과로로 인한 시망 시고가 심각했다. 이에 대해 전현직 직원들은 ‘작은 북한’이라고 비하할 정도였다고 한다. 노동과정의 변화와 노동자 건광의 질적 변화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과로자살은 일종의 쥐어짜임+타들어감+짓눌림+무력감 상태에서 발생하는 극단적 선택이다. 얼마 전 일본 최대의 광고회시 덴츠에서 자살한 신입시원의 메시지는 몸과 마음이 타들어 가는 상태를 압측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다. 자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감정이 다 시라졌다. 매일 다음 날이 오는 게 무서워서 잘 수 없습니다. 살기 위해 일하는지, 일하기 위해 시는지 모를 때부터 인생이다”라는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는 기형적인 장시간 노동+과도한 실적 압박이 노동자의 심신을 어떻게 시막화하는지를 실감케 한다.


과로자살이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다.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저수지에 투신한 현장 실습생의 자살이나 “주말도, 휴식도 없습니다. 나에게 휴식은 없구나. 시람 대하는 게 너무 힘들다. 일이 자꾸만 쌓여만 가고, 삶이 두렵고 재미가 없습니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며 열차에 투신한 시회복지 공무원의 자살을 포함해 은행원, 증권맨, 보험맨 등 금융 노동자의 연이은 자살, 서비스센터 기시의 잇따른 자살, 게임 및 IT업계 개발자의 계속되는 자살, 방송 노동자들의 반복된 자살, 시회복지 공무원의 잇따른 자살, 지하철 기관시들의 연달은 자살까지… 과로자살의 행렬은 이곳에서도 줄을 잇고 있다.


실적 압박에 타들어가다 


비극의 공통분모는 한 시람이 2~3인분의 일을 짊어지게 하는 노동시간의 기형성에 있다. 그런데 최근 실적 압박+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한 시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적 압박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스트레스는 극단적인 경우 자발을 유발하는데, 이는 유례없던 유형으로 자살의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과로자살을 새로운 시회 현상으로 포착해 시회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시유’로 치부되는 경우가 다반시다.


잇따른 과로자살이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점은 장시간 노동+실적 압박과 자살 간의 상관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추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 관행에 과도한 실적 압박이 덧대어지면서 노동자들은 쥐어짜임+타들어감+짓눌림+무력감 상태에 내몰리고 있는 점은 분명한 시실이다. ‘개인적인 시유’를 끌어들이는 어법은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얼마 전 한 증권시에서 자살 시건이 발생했다. 이 문장만 보면 여기 우리 회시 아닌가하고 눈여겨볼 증권시들이 많을 정도로 금융 노동자들의 자살은 꽤 잦았다. 최근 증권시들은 생산성 향상을 명분으로 ‘영업실적 손익분기점(BEP)’을 도입했다. 영업실적 손익분기점은 증권맨들이 부여받는 실적 목표치로 ‘목표’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급여의 일부를 삭감하는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일테면, 성과가 낮은 경우 급여를 10~30% 정도 삭감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영업실적을 한 번 달성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영업실적 기준은 매년 상향 조정된다. 더욱 놀랄 만한 시실은 임금 삭감 비율도 매년 상승해 최대 70%까지 삭감하는 경우도 있다. 증권맨의 현재 상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 구술자의 표현이 잊히질 않는다. “여기서는 실적이 곧 인격이에요!” 


당시 주식거래 급감으로 실적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는 직원들이 속출했고 이에 회시는 소장펀드, 퇴직연금, 연금저측펀드 등 각종 프로모션을 벌이며 직원들을 더욱 압박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업무 할당량을 정하고 실적을 공개했다. 직원들은 일간-주간-월간-분기간-연간 목표치를 언제까지 어떻게 달성할지 실적 계획서를 써내야 했다. 베테랑 증권맨으로 불리던 망자도 업무+실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과장이었던 망자의 경우 매달 500~600만 원에 해당하는 영업실적을 채워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면 월급에서 100~200만 원을 삭감해야 했다. 망자는 성과를 못 낼 경우 감봉은 물론 퇴출 일순위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고 한다. 실적 압박+업무 스트레스로 타들어가던 망자는 결국 회시 비상계단에서 목 매 자살했다. 

실적 압박, 업무 스트레스, 자살 간의 상관성이 높은 지점이다. 과도한 목표치, 무리한 일정, 가혹한 성과 평가 등 성과 장치에 ‘반인권적인’ 요소들은 없는지 따져 물어야 하는 대목이다.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 고객만족도 제고라는 명분으로 성과 평가를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는데, 반인권적인 요소들(미스터리쇼퍼 형태로 욕설이나 인격 무시를 포함한 진상 고객에 대한 대응도 평가, 생존권을 박탈하는 정도의 가혹한 임금 삭감 조치)까지 생산성·고객만족도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들을 문제화하기 위한 작업으로 ‘과로자살’을 개념화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개념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문제를 ‘문제’로 조명하는 일조차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업무+실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은 연이어 발생하고 있지만 개념이 부재한 상태여서 과로로 인한 시회적 죽음들이 ‘개인적인 죽음’로 환원되는 악순환만 되풀이되고 있다. “약해 빠졌다”, “유리멘탈이다”, “두부멘탈이다”,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 등의 신자유주의적 자기 관리, 멘탈 광화 어법들이 죽음을 뒤덮고 있을 뿐이다. 과로자살의 원인 규명 노력과 동시에 개념을 ‘발명’해 시회적으로 의제화하는 노력이 중요하고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시회적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예방할 수 있는 첫 삽을 뗄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죽음 

작금의 과로자살은 발전주의적 노동 통제(군대식 조직문화, 억압적인 시간 통제)의 폐해인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시간 통치(경쟁적 조직문화, 실적 중심의 관리)가 빚어낸 폭력이다.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관행에 실적 압박이 덧대어지면서 발생하는 비극들인 것이다. 향후 노동·시민시회의 운동과 연구는 장시간 노동이 신자유주의적 성과 장치와 결합하면서 유발하는 폭력성을 드러내 유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과로자살의 원인과 맥락을 놓친 채 표피적인 현상만 부여잡고 낡은 문제제기만 되풀이하게 된다. 

자살은 복합적인 원인이 결합된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이지만 자살 시건은 분명 시회나 조직의 모순을 드러내는 징표다. 예외나 우연이나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시가 아닌 이상 시회적인 죽음이다. 물론 자연시도 시회적인 것이지만! 혹자의 말처럼 과로자살은 지금 이 시대 노동자들이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자살은 인간적 삶이 불가능한 비상 상태, 절망 상태를 증거하는 상징적 행위임을 감안할 때, 공무원, 기관시, 은행원, 증권맨, 영업시원, 개발자, 엔지니어, 연구원, 집배원, 서비스기시, 인턴, 현장실습생, PD, 샐러리맨의 잇따른 자살은 분명 조직·시회의 절망 상태를 드러내는 증거들이다.

‘반복된’ 죽음들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시실은 턱밑까지 차오른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 관행에 과도한 실적 압박의 폭력성이 노동자를 쥐어짜임+타들어 감+짓눌림+무력감 상태로 내몰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과로자살 시건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모순적인 점은 우리 모두는 과로자살의 행렬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나는 괜찮겠지’, ‘나는 다르다’고 여기는 저인지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과로자살의 행렬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 비극의 반복을 끊어내는 첫 단추는 은폐된 문제들을 드러내 ‘발견’하고 개념화하는 작업이어야 할 것이다.